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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封 한국의 금관 韓國的金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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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금관 韓國的金冠

出版日期
2020/08/20
閱讀格式
PDF
書籍分類
學科分類
ISBN
9788949949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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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館館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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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
우리 民族의 문화는 先史時代부터 생성되어 진화와 발전, 퇴화와 소멸을 끊임없이 반
복하였다.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문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동반한 傳統文化財는 문
화의 연속성을 이어주는 매개체로서 단절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무지개다리 역
할을 하여 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여해준다. 또한, 지난 역사의 뿌리를 찾아주
고 현재의 우리를 일깨우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민족의 資産이다. 사람
들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오고 가지만 이 시간에 존재하는 우리가 올바르게 보존되
고 평가된 문화재를 後孫에게 남겨준다면, 새로운 문화의 창조만큼이나 값진 일이 될
것이다.
반면에 문화재의 잘못된 평가와 해석은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와 같으며 심한 지
경에 이르면 민족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게 한다.
신라 금관의 경우에 금관의 기원과 해석에 대하여 연구자들의 입장은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이 왜곡한 논리를 비판 없이 수용하여 그대로 주장하
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신라 금관의 시베리아 기원설’은 일제강점기
어용학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제기되었는데 아직도 일부 국내 연구자들은 왜곡된 논
리를 지속해서 발표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미디어와 연계하여 국민에게 잘못된 논
리를 전달하기도 한다. 문화재의 의미가 왜곡되거나 폄하되면 제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으며 오랜 기간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것은 문화재의 주체인 우리 국민이다. 그러
기에 문화재의 올바른 해석은 후손인 우리의 무한 책임인 동시에 의무이다.
筆者는 지난 40여 년간 전국에 산재해 있는 고려청자 도요지, 조선백자 도요지를
비롯하여 무명의 절터, 국내외 문화재 발굴 현장 답사와 유물조사 등을 통하여 우리
문화재에 대한 보존, 올바른 해석과 평가를 위하여 노력해왔다.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해석과 평가란 문화재를 이해하고 감상하며 鑑定하는 것
이다. 특히, 문화재의 올바른 해석과 감정에는 인생의 전부를 투자해도 부족하다. 전
공자라고 하더라도 문화재의 감정을 못 하는 것이 창피한 것은 아니다. 모르면서 아
는 척하는 것이 더 창피한 것이며, 전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훨씬 더 창피한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를 實見하지도 않고 그 문화재의 감정을 論하는 자는 문화재를
논할 기본적인 자격조차 없는 자다.” 이는 필자가 문화재를 대하는 새로운 연구자들
에게 항상 요구하는 기본자세이다.
전 세계 古代王國에서 제작되어 현재까지 전해지는 金冠은 대략 100여 점에 불과
하다. 그중에 현재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금관은 고구려 금관 1점(전 평안남도 강서군 보림
면 간성리 출토)과 가야 금관 2점(전 고령 출토 리움 소장 금관, 오구라컬렉션 금관), 신라 금관 7점(교동금관, 호림금관, 이사지왕금관(금관총), 서봉총금관, 금령총금관, 황남대총금관, 천마총금관)으
로 모두 10점의 금관이 있다.
외국에도 고대 그리스 미케네, 미노아, 마케도니아와 에트루리아의 금관, 히타이
트 금관, 스키타이 금관, 고대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국의 금관,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금관, 중남미 콜롬비아의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마야, 잉카 금관 그리고 이집트 금관
등 세계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古代에 제작된 금관은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지만 현존하는 古代金冠 중에 우리
나라 금관의 조형미와 예술성이 가장 뛰어나다. 수 세기에 걸친 발전과 성장, 소멸의
과정을 통하여 고대 금관공예의 한 장르를 이룩하였으니 자랑스럽다. 아울러 ‘금관의
종주국’이란 별명이 붙을 만한 세계적인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으며, 아직 발굴되지
않은 新羅의 古墳에 부장되어 있을 금관과 그동안 발굴된 銀冠, 金銅冠, 銅冠까지 포함
하면 금관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문화재로 자리 잡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동안 금관의 종주국에 걸맞은 금관의 연구는 매우 미진하였다. 더구나
우리나라 금관을 제일 먼저 발굴하고 접한 일제 어용학자들의 눈높이를 벗어나지 못
하여 그동안 금관의 기원과 용도, 상징적 의미가 왜곡되어왔다. 더욱더 안타까운 점
은 현재까지도 이에 대응하여 자주적이고 객관적으로 금관의 기원과 상징, 의미의 논
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신라 금관의 상징을 사슴뿔이나 나뭇가지, 시베리아
샤먼의 관으로 스스로 卑下하고 있다.)
필자는 이미 2014년에 현존하는 實證遺物을 근거로 금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우리나라 금관에 대한 새로운 理論을 1차 증거자료인 當代의
실종유물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논리를 주장한 것이다. 本稿에서는 삼국시대 금관의
조형적 특징과 의미, 금관의 실용 여부, 금관의 기원에 대하여 바르게照明해본다.
이 책이 발간되도록 도와주신 경인문화사 한정희 대표님과 편집부를 비롯한 국
내외 각 기관의 지인들께 감사드리고, 항상 보고 싶은 누님 故 김혜주 박사의 영전에
이 책을 바친다.
4 3 5 3 년 단原 기禪金大煥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Model
好的,這是一篇關於韓國金冠文化遺產的文章翻譯:
序言
我們民族的文化從史前時代開始生成,並不斷經歷演化、發展、退化和消亡。在形成我們民族獨有文化的過程中,相伴的傳統文化遺產作為連結文化連續性的媒介,扮演著連結斷裂的過去與現在的彩虹橋角色,賦予民族認同感和正統性。此外,它也是尋找過去歷史根源、啟迪當下的我們、指引未來方向的重要民族資產。人們雖然隨著時間和空間來來去去,但若活在當下的我們能將妥善保存和評估的文化遺產留給後代子孫,那將會是與創造新文化同樣珍貴的事情。
反之,對文化遺產錯誤的評估和解釋,等同於扭曲歷史的行為,甚至嚴重到會動搖民族的認同感。
以新羅金冠為例,儘管研究者們對金冠的起源和解釋可能各有不同,但卻絕不能容忍在日帝強佔時期,毫無批判地接受並主張殖民史學所扭曲的理論。「新羅金冠的西伯利亞起源說」最初是由日帝強佔時期的御用學者提出,至今仍有一些國內研究者持續發表被扭曲的理論,甚至與部分媒體合作,向國民傳達錯誤的邏輯。一旦文化遺產的意義被扭曲或貶低,就很難恢復原貌,而長期遭受損害的,正是文化遺產的主體——我們國民。因此,對文化遺產的正確解釋,既是我們後代的無限責任,也是我們的義務。
筆者在過去40多年來,通過走訪全國各地散佈的高麗青瓷窯址、朝鮮白瓷窯址,以及無名寺廟遺址、國內外文化遺產發掘現場考察和文物調查等,一直致力於文化遺產的保存、正確解釋和評估。
「對文化遺產的正確解釋和評估,就是理解、欣賞和鑑定文化遺產。特別是,要正確解釋和鑑定文化遺產,即使投入一生也嫌不足。即使是專業人士,無法鑑定文化遺產也不是羞恥的事。不懂裝懂才更羞恥,認為自己無所不知則更為羞恥。而且,從未親眼見過文化遺產卻議論其鑑定的,甚至連議論文化遺產的基本資格都沒有。」這是筆者對待文化遺產的新研究者們,一貫要求的O基本態度。
全世界古代王國製作並流傳至今的金冠大約只有100件。其中,目前已知的韓國金冠共有10件:高句麗金冠1件(傳出土於平安南道江西郡寶林面干城里)、伽倻金冠2件(傳出土於高靈,Leeum美術館所藏金冠、小倉收藏金冠)、新羅金冠7件(校洞金冠、湖林金冠、伊思智王金冠(金冠塚)、瑞鳳塚金冠、金鈴塚金冠、皇南大塚金冠、天馬塚金冠)。
國外也有古希臘的邁錫尼、米諾斯、馬其頓和伊特魯里亞金冠,赫梯金冠,斯基泰金冠,古美索不達米亞烏爾王國金冠,薩珊王朝波斯的金冠,中南美哥倫比亞古代遺址中發現的馬雅、印加金冠以及埃及金冠等,分佈在世界各地。
雖然古代製作的金冠分佈於全世界,但在現存的古代金冠中,我國金冠的造型美和藝術性最為出色。經過數個世紀的發展、成長和消亡的過程,它開創了古代金冠工藝的一個流派,令人自豪。同時,傳世的許多世界級作品足以配得上「金冠宗主國」的稱號,如果再算上尚未被發掘的新羅古墓中可能隨葬的金冠,以及已經發掘出的銀冠、金銅冠、銅冠,金冠足以代表韓民族,成為其象徵性的文化遺產。
然而,至今為止,與金冠宗主國相稱的金冠研究卻非常不足。更令人惋惜的是,由於未能擺脫最早發掘並接觸我國金冠的日帝御用學者的視角,金冠的起源、用途和象徵意義一直被扭曲。更令人遺憾的是,直到現在,我們仍然未能自主且客觀地闡述金冠的起源、象徵和意義的邏輯。(新羅金冠的象徵被自行貶低為鹿角、樹枝或西伯利亞薩滿的冠飾。)
筆者已於2014年,根據現存的實證文物,發表了關於金冠正確解釋的論文*。該論文以第一手證據資料,即當代失傳文物為基礎,提出了關於韓國金冠的新理論。在本文中,將正確闡明三國時代金冠的造型特徵和意義、金冠的實用性,以及金冠的起源。
感謝京仁文化社韓政熙代表和編輯部,以及國內外各機構的友人,幫助本書得以發行。謹將本書獻給我永遠思念的姊姊故金惠珠博士的靈前。
檀君紀元4353年
金大煥
  • 出版地 韓國
  • 語言 其他語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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